다시 새겨봅니다, 김용기의 ‘福民사상’
‘가나안, 끝나지 않은 여정’ 출간
개신교 농민운동가 김용기 장로, 농군학교 바탕된 사상 재조명
김용기가 장로가 된 것은 1939년. 일제가 신사 참배, 창씨개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때다. 그는 장로 장립식 때부터 파란을 일으켰다. 일왕의 초상화에 절하는 ‘동방 요배’와 황군 장병 무운을 비는 묵도를 거부한 것. “못 합니다!” 1년 전 장로교 총회가 결의한 신사 참배, 동방 요배를 거부한 것. 그는 이미 1년 전인 1938년 고향 경기 양평 봉안에 이상촌을 건설하면서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선언한 상태였다.
부친을 통해 신앙을 접한 김용기는 성경을 ‘삶의 지침서’로 읽었다. 광복 후 그는 다시 이상촌 건설에 나섰고, 가나안 농군학교를 연 것 역시 신앙 현실주의였다. ‘가나안’과 ‘복민’은 김용기 사상의 핵심. 지금 이스라엘 땅을 봐도 그렇고 성경 속 가나안은 저절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약속한 이 축복의 땅을 끊임없이 가꾸고 돌보면 옥토가 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황무지가 되어 버린다”는 게 김용기의 생각이었다. ‘복(福)’도 마찬가지. 그가 가장 혐오한 것은 “앉아서 복 받기 좋아하는 사상”이었다. 그에게 ‘복민’은 백성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문명의 발달로 시대가 완전히 바뀐 듯 착각하지만 먹고 일하고 걱정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은 변한 것이 없다”며 “그렇기에 ‘참 살길 여기 있다’ ‘이렇게 살 때가 아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여기 있다고 여전히 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16년 11월 11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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